현재 전 대통령 전두환의 국가장 논란이 한창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국가장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전두환의 과거 잘못을 뒷받침해주듯 미국의 기밀문서에도 5.18에 관련한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전두환 미국 기밀문서의 내용과 전두환 국가장 논란, 전두환의 과거 생애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전두환 나이 및 출생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나이는 1931년 생으로 올해 90살입니다. 전두환은 제 11, 12대 대통령이며 경남 합천 출생으로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 계엄을 확대한 인물입니다. 언론통페합과 삼천교육대 창설, 민주화 운동 탄압을 지속한 인물이며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고 퇴임하였습니다.
전두환과 광주 5.18 민주항쟁
계엄이 확대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정치인이 체포되기 시작하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시민들이 대대적 시위를 벌이며 저항하며 민주 항쟁을 펼쳤습니다. 광주 시민봉기는 5.18일에 시작되어 27일까지 지속, 전두환은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신 군부는 5.22일 김대중이 폭동을 조종하고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란 혐의를 씌우기도 했으며, 현재 이와 관련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1980년 5월 21일, 27일 광주 도심에서 헬기의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 전두환에게 명예휘손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전고 하였습니다.
전두환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
경상남도 합천군 출생으로, 육사 11기로 입교하였습니다. 후에 이 기수가 주축이 되어 하나회를 결성하게 됩니다. 5.16 군사정변 때 박정희를 지지하여 박정희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는데, 10.26 사건 이후 계엄법에 의거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자동 보직되었고 이때 수사본부장이라는 직책과 하나회를 통한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았습니다.
1980년에는 5.17 내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을 사임시킨 후 간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임기가 거의 만료되어갈 때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여 6.10 민주 항쟁이 일어나 국민의 불만이 점점 거세지자,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및 단임제로 개헌을 마치고 만기 퇴임하였습니다.
퇴임 후 1995년 노태우와 함께 구속 기소되었으며,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노태우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나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선 이 둘에 대한 사면 여론이 생기면서 김대중만이 아닌 이회창, 이인제 모두 사면을 공약으로 들고나왔으며, 결국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인해 사면되었습니다.
전두환은 하나회 소속 대한민국의 장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계엄법에 의거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10.26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김재규의 궁정동 사건과 전혀 관계없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으로 체포, 군권을 장악하고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집권기 동안 삼청교육대, 땡전뉴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평화의 댐, 형제복지원 사건,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등 각종 반민주, 반인권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6.29 선언으로 노태우 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에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들과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습니다. 이때문에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권하자마자 삼청교육대 등 인권 유린 사건이 줄을 이었고, 사법적 측면에서 볼 때 엄격한 판결 및 국민 통제가 있었고 국민들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체벌 등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박정희와 다르게 전두환은 본인이 군인 출신인 만큼 경제는 김재익 등 전문 관료에게 맡기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전두환은 국보위 시절부터 유명한 경제 관료들에게 개인 과외를 받을 정도로 경제 공부에 열중했으며 당시 경제에 대해 가르쳐 준 인물 중 한 명이 김재익입니다.
과외를 받으며 그의 식견에 감탄한 전두환은 김재익의 정권 참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재익은 자신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불간섭과 외부 압력에 대한 보호를 요구했고 그러면서 나온 유명한 말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입니다. 그렇게 김재익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알기 쉽게 밑그림을 그려 전두환의 머리에 넣어준 것이 전두환 집권기 내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상기한 경제의 김재익, 외교의 노신영, 이범석, 과학 기술의 오명 등 중공업 과잉 투자가 대대적으로 정리되었고, 3저호황을 통해 80년대 전 세계에서 눈에 띄게 빠르고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재익이 정말 온전히 "경제 대통령"이었냐면 그렇지는 않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닏다. 당시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이루어진 중화학 공업 분야에 대한 막대한 산업 투자를 정리하는 임무가 전두환 정권에게 주어졌는데, 전두환은 김재익의 의견을 온전히 따르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재익은 농업이나 자동차 산업 포기를 외칠 정도의 안정화론자였습니다.
이런 김재익을 위시로 한 안정화론자들과 발전주의자들의 싸움에서 최종 결정에 관한 사항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김재익은 정권 초기의 기초만 다지는 역할을 했을 뿐,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사공일 등 경제 보좌관들이 중용되었는데요. 김재익이 적극 지지한 이른바 금융실명제에 대해서 전두환도 도입 의지를 보였으나, 1977년 부가가치세 실시되어 큰 혼란 끝에 겨우 정착된 마당에 또 다시 큰 경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 시행에 부담을 느낀 일부 경제 관료들과 학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반대론자가 그 유명한 김종인입니다.
그가 전두환 앞에서 평소 친한 김재익과 설전을 벌여가며 전두환을 설득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비자금을 위해 시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80년대는 한국 상류층 사회의 엘리트화가 진행된 시기로 전두환은 소수의 재벌 및 상위 관료로 나라를 재편한 시기라는 평가까지 있습니다. 물론 실효적인 재벌 견제와 수많은 중소기업 육성책이 지원되었으나, 소위 엘리트주의와 한국에 고질적인 일류 대학교 학벌 선호 문제도 이 시기에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특권층 사회화 부작용은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김영삼 시기에 한꺼번에 터져나와, 지존파 사건 등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이어집니다.
전두환의 생애와 집권 당시의 상황, 광주 만주 항쟁까지 알아보았는데요. 과거의 잘못을 결정 받는 현재 상황에 다다른 전두환은 이제 90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됐습니다. 때문에 건강이 안좋은 것도 사실일 겁니다.
전두환 5.18 관련 미국 기밀 문서 공개
미 국무부가 지난해 공개한 5.18 관련 43건의 기밀문서에 이어 올해도 35건을 추가 공개했습니다. 최근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가 철저한 조사를 위해 해당 문서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련 문서들을 확인해 본 결과, 전두환이 당시 대한민국의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고, 공수여단 이동에있어 실질적인 명령권자가 전두환이었음을 확신했습니다.
5.18 비극에 대해서는 공수부대 지휘권이 없던 만큼 자신이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전두환이었습니다. 1979년 12.12 사태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을 몰아내려는 군 내부의 '역 쿠데타' 동향을 알고도 미국이 그 보다 더 큰 파장이 우려하며 반대했던 사실이 이번 문서로 확인되었습니다.
한국군 내 전두환을 표적으로한 음모가 있다는 정보와 함께 군 내부 분열이 12.12 때보다 더 큰 여파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 그때 당시의 보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 5월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학생들 간의 심각한 충돌이 있을 것을 예상했고,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벌써 정예 부대 2~3개를 서울로 이동시켰다는 내용도 이 같은 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5.18관련 문서에는 당시 수한 미국대사가 80년 5월 9일 자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만나서 공수부대의 수도권 이동에 대해 항의하고 학생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도록 권고했다는 내용 또한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남는 뼈 아픈 1980년 민주화 운동 5.18 사태에 내란과 군사 반란의 혐의로 전두환은 1997년에 와서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현재 그 무거운 무기징역이라는 형벌마저 특별 사면을 받은 상황이긴 합니다.
전두환 국가장 시행?
김부겸 국무총리는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국가장 예우를 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 "국민의 보편적 상식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 습니다. 김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란 목적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씨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으로 국가장의 예우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묻자 이같이 답했습니다.
김 총리는 "아직 결정한 것은 없다”면서도 "윤 의원이 우려하는 내용은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대사를 통해 여러 가지 드러난바, 기록된바, 국민이 알고 있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내용 모를 리 없지 않겠느냐”며 "가정을 전제로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말씀 드린 대로 국민이 알고 있는 그런 정도의 결정은 나오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총리는 전 전두환두환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 여부에 대해서도 "국립묘지 안장법에 말에 의하면 국립묘지에는 가실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내용은 몇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윤 의원이 걱정하는 것이 걸러질 기회가 있을 것이고,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윤 의원이 "내란 목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이 국가 예우를 받는 것에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김 총리는 "그게 바로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동의했습니다. 사실상 국가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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